| | 평소 우리가 아침식사 대신에 챙겨먹고 있는 콘프레이크의 탄생 배경을 알고 계시나요? 콘프레이크는 1894년 켈로그 형제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사실은 병원의 환자식으로 제공되던 음식이었습니다. 내과 의사였던 존 하비 켈로그는 빵 대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개발 중이었는데요. 어느 날 환자식으로 제공할 밀가루 반죽을 실수로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았고, 냉장보관이 되지 않았던 반죽은 바싹 말라있었습니다. 켈로그 형제는 이것을 롤러에 넣어 압착을 했고, 각각의 낱알들은 눌러져 얇은 프레이크 조각이 되어 나왔습니다. 또한 이것을 굽자 바삭바삭해진 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인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콘프레이크의 탄생이고 켈로그 시리얼은 현재 다양한 맛과 종류로 출시되면서 전세계 수많은 가정의 식탁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방면에서 내로라 하는 브랜드의 배경과 연혁을 살펴보면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오늘은 시대가 바뀌어도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쌓아오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기업이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 | 렉서스의 탄생과 토요타의 파격적인 결정 | |
| 미국의 중저가 자동차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토요타는 실무진 20명에게 뜬금없이 1년간의 유급휴가를 줍니다. 이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상류 사회와 문화를 즐겼고, 토요타는 이를 위해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년 후, LS시리즈의 첫 모델, LS400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들이 경험한 세계 상류층의 경험과 생활이 자연스럽게 고급 세단의 개발로 이어진 것입니다.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사실을 숨기고 치룬 데뷔전의 결과는 대성공! 당시 미국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던 벤츠와 BMW의 경쟁차종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능을 갖추었고, 렉서스만의 안락함과 정숙성은 미국 소비자들이 독일의 고급세단을 통해 맛보지 못하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더 저렴했죠. 토요타가 ‘저렴하고 대중적인 일본차’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경영진의 신선한 결정과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LS시리즈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렉서스의 최고 기함으로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 | | | 물샐 틈 없는 잠금혁명, 락앤락 | |
| 냉장고 문을 열자 반찬통이 우르르 쏟아지고, 뚜껑이 열려 국물이 쏟아지는 난장판 속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로 시작된 락앤락. 당시 주부들이 많이 사용하던 미국 제품은 불투명한 재질 때문에 뚜껑을 열기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었는데, 특히 뚜껑을 여닫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이에 락앤락은 뚜껑을 열지 않아도 내용물을 쉽게 확인하고, 여닫기 쉬우면서도 내용물이 새지 않는, 우리의 전통적인 경첩에서 착안한 결착형 밀폐용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 특히 대형 유통업체들은 새로운 제품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취급을 기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해외 주방용품 전시장에서 바이어를 통하여 인포머셜(information과 commercial의 합성어, 상대적으로 정보량이 많은 상업광고)에 대한 제안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인포머셜을 통한 해외 홈쇼핑에서 연속 매진이라는 성공을 기록하였고, 그들의 마케팅 기법을 그대로 들여온 락앤락은 결국 국내 홈쇼핑에서도 대박으로 이어졌습니다. 락앤락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광고를 제작하고, 동시에 동호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소비자 활동을 꾸준하게 진행하였습니다. 락앤락은 현재 세계 100여개 국가에 수출을 하고 있고 특히 해외시장에서는 고급브랜드 전략과 현지화 전략을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락앤락을 사용하는 가정에서는 이제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번거로움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됩니다. 일상 생활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하여 개발한 제품을 새롭고 다양한 마케팅 활동으로 성공까지 일궈낸 락앤락. 사소할 수 있었던 소비자의 요구를 부각시킨 락앤락의 전략이 성공의 밑거름 역할을 한 것입니다. - 참조 : 미디어펜(http://www.mediapen.com/news/view/81540) | | | | 제 2의 인생, 아이리버 | |
| 약 10여년 동안 아이리버는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국내 음향기기 시장을 주도하고, 뉴욕 한복판에서 사과를 베어 무는 광고를 게시하며 아이팟을 내세웠던 애플을 조롱할 정도로 성장했던 아이리버. 그러나 폭발적이던 수요는 점점 꺾이기 시작했고,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아이리버 앞에는 거대한 태풍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끝없는 나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리버는 다시 그들이 잘하는 것으로 돌아가되,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적인 소리를 내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된 ‘티어드롭(Tear drops)’ 프로젝트. 험난한 기술 개발 끝에 한 손에 들어가는 앙증맞은 크기지만 고해상도 음원 파일을 포터블로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혁명적인 제품을 출시하게 됩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오디오 업계 전문가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출시 3개월만에 전 세계 1만 5000대 판매를 기록, 한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 등에서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지갑을 열었습니다. ‘더 이상 이보다 좋은 제품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영국 오디오 잡지의 극찬까지, 아이리버는 기적 같은 반전을 이룬 셈입니다. | | | | 추억으로 남을 뻔 했던 레고의 이야기 | |
| 조그마한 블록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난감 레고. 그런 레고가 추억의 브랜드가 될 뻔했던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1990년대 이후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며 레고는 주고객층이던 어린 고객들을 빼앗기며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경영진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비디오 게임 사업에 뛰어들고, 영화를 소재로 한 ‘스타워즈 시리즈’나 ‘해리포터 시리즈’ 등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하였죠. 이는 전례 없는 혁신이었지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파산 직전에 레고의 CEO가 된 크누스토르프는 레고의 정체성이 ‘블록’임을 깨닫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류한 뒤, 잘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비핵심 사업 대부분을 정리하고 레고 블록에 집중하되, 주고객층을 성인까지 넓히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았고, 꾸준히 성인 고객을 겨냥한 모델을 내놓았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장난감 소비가 줄어들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아이들이 모바일 게임을 더 즐기게 되면서 장난감 업계의 불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불황 속에서도 레고는 제품에 스토리를 입히는 ‘이야기 마케팅’과 전통 제조업 가치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리고 2015년, 레고는 매출 6조 2400억원으로 세계 장난감 업체 정상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됩니다. | | “우리는 혁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레 겁을 먹습니다. 거창한 변화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들죠. 그러나 혁신은 바깥이 아닌, 나를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겁먹지 마세요. 먼저 나를 알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알고 보면 가장 혁신적인 도전의 시작입니다.” - 출처 : 도서 <레고는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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