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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Letter

[mplanners 엠플래너스]버려진 것들에 숨을 불어넣는 공간 재생

기차역이었던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화력발전소였던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현대미술관, 역사의 흔적을 굳이 지우려 하지 않고, 문화와 만나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인천의 아트플랫폼과 일본 요코하마의 아카렌가(붉은 벽돌 창고)는 모두 창고를 유지한 채, 내부에 갤러리 및 샵 등 문화 공간을 위치시켜 활력을 불어넣은 공간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공간 재생이라고 합니다. 낙후되고 개발이 필요한 공간을 있는 그대로 살리되 문화적 재생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하는 것으로 많은 나라에서 공간 재생을 시도하고 있으며 성공적인 사례도 많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세 차례의 공간 재생을 겪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El Ateneo Grand Splendid)입니다. 엘 아테네오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도서관 중 2위로 선정한 대형 서점으로 세계적인 관광명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1919년 오페라 극장으로 시작되었다가 1929년 영화관으로 그리고 2000년부터 서점으로 재생되었습니다.

다음은 핀란드 헬싱키의 카타야노카 호텔(Hotel Katajanokka) 입니다. 이 호텔의 사진을 먼저 보시면, 원래 어떤 장소라고 생각되시나요?

이 곳은 바로 카타야노카 감옥이었습니다. 175년동안 감옥으로 운영된 장소를 어떻게 호텔로 재생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내부 사진을 보시면 감옥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듯합니다. 이 호텔의 테마는 '감옥'이기 때문이죠. 공간재생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은 원래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에 맞춰 바스티유 감옥 자리에 세워졌다는 것도 독특한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0년된 가스 저장소를 재활용한 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타(Gasometer)의 사례도 재미있습니다. 공간을 문화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한데요. 가스 저장소가 600여개의 주거용 주택, 247개의 학생 기숙사, 유치원 그리고 쇼핑몰, 레스토랑, 공연장으로 재탄생 했습니다.
중국 베이징의 '798예술구'는 1950년대 구소련과 독일에 의한 군수산업공단이었습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공간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타임, 뉴스위크, 포춘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문화적 상징성과 발전 가능성이 있는 예술도시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400여개가 넘는 전문 화랑과 갤러리, 독특한 인테리어의 카페들과 아직 가동중인 공장까지 공존해 있습니다.

일본 시코쿠의 나오시마는 세계적인 여행 잡지 '콩데나스 트레블러'에 세계 7대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한 섬입니다. 이 섬은 원래 산업 폐기물 불법 투기장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나오시마는 장기적인 프로젝트 아래 문화의 섬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나오시마 국제캠프장', 그 다음은 현대예술전이 열릴 수 있는 '베네세 하우스' 개관부터 2010년에는 '세토우치 국제 아트 페스티벌'을 추진하며 나오시마 인근 섬들도 예술섬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도 이러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1900년대 산업 물자를 운반하던 2층 높이의 기차길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서 버려진 기찻길을 공원으로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원은 현재 뉴욕 시의 관광 명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내 사례로 제주 한림읍의 '앤트러사이트 한림'이라는 카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곳은 원래 1951년에 세워진 전분 공장이었습니다. 1991년에 이 공장은 문을 닫게 되면서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의 공간이었습니다. 공장 안의 기계와 소품들을 유지한 채, 카페 그리고 수공예품, 서적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서울 성수동입니다. 이곳은 패션쇼부터 쇼케이스까지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 공간 대림창고부터, 카페 '자그마치', 아트 갤러리 '베란다 인더스트리얼'까지 일대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성수동 일대는 원래 공장과 주거지, 창고가 공존해오던 장소입니다. 그러나 점차 공장이 문을 닫기 시작하며 일대가 어두운 과거 속으로 묻힐 뻔 했습니다. 대림창고는 본래 정미소, 카페 '자그마치'는 인쇄 공장, '베란다 인더스트리얼'는 금속 부품 공장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아이디어로 이 지역에 다시 숨을 불어 넣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도 '대림창고'에서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컨셉에 맞춰 활용도가 상당히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이처럼 대대적인 프로젝트 아래 재탄생하는 건축물, 그리고 지역들을 변화시킨 사례도 있지만, 작은 아이디어로 공간 재생을 시도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 외곽지역에서는 더 이상 쓸모 없어진 공중전화박스를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 마을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명 미술가 훈더르트바사(Hunderwasser)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다양한 색채로 생명을 불어넣어 지역의 명소로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공간 재생은 크고 작은 아이디어를 통해 의미가 없어진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지속적인 관리와 관심 속에 있어야 하겠죠. 공간 재생을 위한 시도를 하고 일회적으로 붐을 일으켜 마케팅 효과를 본 후 또다시 폐허가 되어가는 사례도 많습니다. 공간 재생을 트렌디한 마케팅적 요소로 보기 보다는 우리와 지속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벽화나 갤러리 같은 공간으로 다시 꾸며지는 국내의 공간 재생 프로젝트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잘된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과 트렌드를 따르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의 진정한 의미 사이에서 고민하고 더 좋은 답을 찾아가는 밸런스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하는 일에도 이런 밸런스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말에는 의외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새로 태어난 공간들이 없는지 관심 있게 살펴보고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요?